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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8

하람이 안녕.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오랫만인 것 같구나. 원래는 하람이가 남양주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 자주 만나기 어려우니 그때부터 편지를 써볼까 생각했는데 조금 일찍 시작하게 되었단다
아빠가 알기로는 오늘로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났다고 알고 있어. 다르게 말하면 즐거운 방학의 시작이고, 또 다르게 말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의 문턱에 온 것 같아. 아직 고등학생도 아닌데 어째서 수험생이냐고 생각들 하겠지만, 아무래도 아빠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보다는 배워야 할 것이 늘어나서 1년 앞당겨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단다. 수학의 경우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지만 과학과 같은 과목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열심히 연구를 하다보니 확실히 아빠가 학교를 다닐때 보다는 배워야 할 것이 늘어난 것 같더라고. 

편지를 쓰며 하람이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생각해 봤단다. 어차피 공부야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기 때문에 아빠가 가르쳐 줄 것은 없을 것 같고, 결국 아빠가 하람이에게 알려줄 것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것들이 될 것 같단다. 일단 이번에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 싶단다. 

흔히 인생이라고 하면 뭔가 엄청나게 큰 주제이고 모호한(애매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생(人生)이라는 한자는 단지 사람이 사는 삶을 이야기 한단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라고 할 수 있지. 예전 네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단다. 인생은 하얗고 큰 도화지에 자신의 색과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라고.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아빠는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한단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뭔가 대단히 크고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를 도화지에 조금씩 그려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우리는 할 일이 없을때 침대에 누워서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며 내가 이렇게 된다든가 저렇게 되고 또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래라는 것은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 온 현재의 총합이란다. 예를들어 우리가 매일 한시간씩 외국어 공부를 하는 현재를 이어나가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내가 상상한 것처럼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내가 완성되는 것이야. 어떤 것도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에, 결국 미래라는 것은 현재를 합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는 어떤 것도 노력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더구나. 참 슬픈 이야기지. 흔히 중2병이라고 하는, 사춘기 시작과 함께 겪는 마음의 병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왠지 모르지만 남들과 다른 것 같고, 남들이 없는 능력이 있는 것 같고, 남들과 다른 미래를 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지만 사실은 그 어떤 것도 남들과 다른 것은 없고 그저 그대로 누워서 미래만 상상하고 있다면 아무것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뜻이니까.
결국 미래에 대해 꿈을 갖는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노력하며 쌓아 나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단다. 

하람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떤 꿈을 꾸고 있니? 노래를 잘 하는 하람이라든가, 악기를 잘 다루는 하람이라든가, 아니면 남들의 고민이나 문를 해결 해주는 하람이를 꿈꾸고 있니? 하람이는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 항상 궁금하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국은 유럽의 나라와는 달라서 이런 고민을 아주 짧은 시간내에 하고 빨리 결정을 하지 않으면 이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란다. 왜냐하면 나보다 일찍 자신의 미래를 정한 사람들은 그 미래를 위해 갈 길을 정해두고 그 방향으로만 나아가게 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나는 수백개의 갈림길이 있는 삶 속에서 계속 엉뚱한 길로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소비하고 나이를 먹어가다 보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것에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단다. 
뭐 그래도.... 한국보다 살기 어려운 나라의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단다. 예를들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를 생각해 보면, 거기서 여자는 학교를 다니지도 못하고 글을 배우지도 못하며 그저 집안 일을 돕다가 사춘기를 지나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무조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야 하니까. 아무 선택권도 없는 삶 보다는 우리나라의 삶이 낫다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에도 우리보다 조금 천천히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 말만 그렇고 우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단다. 아빠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요즘은 아빠가 살던 시대보다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뒤늦게 깨달아 노력을 한다고 해도 남들보다 뒤쳐져 있다보니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거든. 

이번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하람이는 일단 전학을 갈지 말지를 정해야 한다고 알고 있단다. 하지만 이 결정과 함께 아빠는 네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도 결정했으면 좋겠단다. 뭔가 정확한 직업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정하는 것이란다. 예를들어 아빠의 경우에는 생물학이 다른 과목보다 재미있었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의사를 결정했거든. 사실 의과대학을 가겠다는 결정은 좀 더 늦게 한 것이고 중학교때에는 그저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란다.
딱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해. 하람이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이야. 글을 써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싶은지 아니면 남들보다 빨리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 싶은지, 또는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다거나, 아니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간의 중개자가 되고 싶은지, 그것도 아니면 시시비비(옳고 그름)을 가려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옳은지를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말이야.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쉽게 이룰 수 없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꿈꾸며 나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물론, 한번 정하면 다시는 바꾸지 못하고 그런 것은 아니란다. 나중에 바꿀 수도 있거든. 하지만 적어도 내가 꿈꾸는 목표가 있어야 사람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여름방학동안 한번 고민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단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해보렴.  

이제 본격적으로 날씨가 더워질 것이라 하루하루 힘들겠지만 그래도 많이 생각해보며 이번 여름 방학을 지내길 빈단다. 

2025.07.18.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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