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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D 03

편지 감사합니다. 편지가 무사히 도착해서 매우 기뻤습니다. 최근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요, 제가 보낸 편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그가 보낸 편지는 4개월째 도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 독일의 DHL은 빠르고 정확함의 상징이었는데 민영화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얼마전 노르웨이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여름에 그곳은 백야의 기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24시간 내내 해가 지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밤에 어둡지 않다면 잠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통 한국은 6월부터 8월까지가 여름입니다. 예전부터 한국의 여름은 심각하게 덥고 습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최근 기후위기로 인해 봄과 가을이 거의 사라지고 여름이 길어졌으며 더욱 덥고 습해진 것 같습니다. 날씨가 너무 가혹해서 이번 여름에는 에어컨이 과열되어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열사병이나 열탈진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래도 9월 중순에 가까워지며 기온이 내려가고 있어 다행입니다. 

저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원은 정부의 공기업인 한국전력이라는 곳에서 지은 병원입니다. 제 전문분야는 화상입니다. 일반적인 원인에 의한 화상도 치료하지만 전기에 의한 화상이 더 전문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화상은 후진국이나 노동환경이 열악한 국가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흔히 말하는 후진국의 질병이지요. 그러다보니 요즘은 환자가 거의 없어서 화상의 치료보다는 탈장의 치료가 제 주 업무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외에 간단한 수술(궤양성 천공이나 소장의 파열, 기타등등)은 전부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은 공기업에서 설립한 병원이지만 실제로는 영리병원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끝임없이 실적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한국의 경우, 모든 국민은 정부의 건강보험에 강제적으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용이나 흉터(한국에서는 흉터의 치료는 미용에 해당합니다)등 몇 가지를 제외하면 모든 질병은 의료보험의 대상이 되어 총 진료비의 5%~20%만 부담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악화로 인해 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것들이 늘어나 많은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민간 의료보험을 가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고 각종 검사가 매우 싸기 때문에 진단이나 치료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집니다. 환자들은 기다리지 않고 즉시 진료를 볼 수 있고 검사와 진단, 그리고 치료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니 좋아하지만 의료진들은 환자 한명당 수익이 매우 낮은 구조라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환자들을 진료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특히 혈액검사나 방사선 검사 역시 거의 대부분 당일에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환자가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는 집에 가기 전에 자신의 질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에 맞는 적절한 처방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옆 나라인 일본에서 어느정도 가져온 것인데 한국의 독재정권 시기에 가져온 것이라 다소 기형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거기다 현대 한국의 특징인 효율성과 생산성이 의료에도 적용되어 의료 시스템 전체가 마치 공장의 생산라인처럼 작동하는 모습입니다. 의사에게도 요구되는 능력이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다릅니다. 환자에게 어떤 검사를 왜 하는지 그 결과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길고 복잡한 설명을 하는 것 보다는 더 빨리 질병을 진단해서 그 결과를 설명하고 치료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를들어... 한국의 내과 의사의 경우 오전 한 세션동안 약 80명의 환자를 소화합니다. 저와 같은 외과의 경우에는 더 빠르게 수술하는 것이 요구되고요. 모든 것이 "더 빨리"에 집중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지난번 제 취미가 동전 모으기와 투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도 수년 전까지는 유표를 수집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1년에 한번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우표책을 사는 정도입니다. 노르웨이도 그렇겠지만 한국 역시 요즘은 snail mail을 사용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일이 일반적이라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보낸 편지에 사용한 우표의 경우에도 주문하고 우표를 받을 때까지 약 10일이 걸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다양한 취미를 가졌습니다. 우표수집, 동전 수집,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자회로 만들기, 사진찍기, 천체사진 찍기, 그리고 아마추어 무선통신을 하기 등을 했습니다. 특별히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싶었다기 보다는 무엇을 해도 쉽게 질려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일이 더욱 적어지면서 인간관계로 인해 취미를 유지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사진은... 대학생때 시작했던 취미입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한동안 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최근 다시 시작했습니다. 사실 사진을 찍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기 보다는 건강을 위해 많은 곳을 직접 걸어다니기 위해 사진을 다시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괜찮은 사진이 나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달 초에 아내와 딸이 처가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심각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딸이 현재 중학교 3학년(15세)인데, 처가집 주위의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편지를 보내는 주소이며 최근까지 딸이 살던 지역은 한국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고 경쟁이 심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제 딸은 극히 우수한 학생은 아니라서 계속 이 지역에서 살다가 고등학교를 들어가게 되면 장래에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한국의 교육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대학 입학률은 약 76%입니다.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모두가 대학에 가는데다 한국은 극한의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평범한 대학을 들어가면 대학을 졸업한 이후 취업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특히 현재와 같이 경기가 좋지 않을때는 이과의 경우 전국에서 10위권 내의 대학에 들어가야 하며 문과의 경우에는 3위권 내의 대학을 가야 어느정도 안정적인 취업이 가능합니다. 결국 취업난과 경쟁의 특성때문에 한국의 모든 학생들은 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경쟁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말씀드리면, 중학교 1~2학년 (13~14세)의 아이가 학교를 마친 후 밤 10시까지 학원을 다니고 집에 와서 새벽 2시까지 자습을 합니다. 네, 흔히 서울의 강남, 대치동(제가 사는 동네입니다)이라는 지역이 이렇습니다. 
제 딸도 이사를 가기 전까지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높은 성적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경쟁이 덜 한 곳으로 이사를 가서 표면상의 성적을 높게 받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이렇게 가혹하게 공부를 시키고 경쟁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물론 경쟁이 조금 적은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고 해서 놀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 부담을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 시험시기마다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 한 명이 반드시 자살을 하는 그런 지옥(여기)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반드시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아마 당신은 한국의 이런 비정상적인 교육열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인도의 델리 공대에서는 매우 흔한 일입니다. 아, 싱가포르의 경우는 전국 고등학생의 석차를 신문에 공개합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신문의 1면에요. 그래서 그 나라도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저는 요즘 혼자 살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딸이 이 지역의 학원을 가기 위해 돌아오기 때문에 같이 있지만 주중에는 아내만 가끔 시간이 있을때 옵니다. 주중에도 딸이 오는 경우는 있지만 그때 역시 학원을 가기 위해 잠시 들르는 정도라서 같이 이야기를 할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 최소 4년은 이런 생활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교육과 관련된 가정의 부담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저출산 국가로 만든 이유중 하나입니다).

제가 편지에 너무 어두운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몸이 좋지 않아서 쉬고 계신다고 하셨지요? 큰 병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올해 초부터 대만과 홍콩에 COVID-19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8월이 되며 환자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판데믹의 초기에 비해서는 독성이 매우 낮아져서 심한 감기와 비슷한 정도로 끝이 나지만 환자를 음압 격리실에 가두는 것은 차이가 없습니다. 

이 편지를 쓰기 전에 인터넷의 백과사전에서 노르웨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몇 번 더 읽어야 외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삶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한국보다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노르웨이는 한국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라서 한국사람 대부분이 노르웨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노르웨이는 천연자원과 수산업으로 유명하다"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근 노르웨이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는 했습니다. 바로 노르웨이의 고등어 때문인데요, 한국의 동해바다에서 많이 잡히던 고등어가 어회량감소와 여러가지 이유로 공급이 줄어들게 되자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산 고등어가 맛있다는 평가가 많아지며 현재 한국에서는 고등어는 무조건 노르웨이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어. 이외에는 몇몇 사람들이 오로라를 보기 위해 노르웨이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물리적 거리가 멀다 보니 잘 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근 악명높았던 스웨덴 게이트 이후로 북유럽에 대해 관심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편지를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졌네요. 그래도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것 같아서 즐겁습니다.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답장을 받지 않아도 편지를 쓸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답장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럼 언제나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만 있으시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