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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8

74하람이 안녕.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오랫만인 것 같구나. 원래는 하람이가 남양주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 자주 만나기가 어려우니 그때부터 편지를 써볼까 생각했는데 조금 일찍 시작하게 되었단다.

아빠가 알기로는 오늘로 중학교 3학년 1학기가 끝난다고 알고 있어. 다르게 말하면 즐거운 방학의 시작이고, 또 다르게 말하면 이제 본격적으로 수험생이라는 타이틀의 문턱에 온 것 같아. 아무래도 아빠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보다는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이 늘어나서 1년 앞당겨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단다.

편지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가지 생각을 해 봤는데, 아빠도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구나. 그래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 봤는데, 그냥 한번에 한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번에는 좀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해 보이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싶단다. 

하람이는 인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사람의 삶이라는 뜻이고 실제로도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살고 그리고 떠나가는 것을 통틀어 인생이라고 한단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단어 그 차체의 의미보다는 사람의 삶이라는 뭔가 특별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단다. 
우리는 사람이고 모두 자신의 삶이 뭔가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아. 흔히 "중2병"이라는 말이 있잖니. 그게 요즘은 허세라든가 자아도취를 하는 모습을 비꼬아 사용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은 중2병에 걸리지 않은 것처럼 스스로 쿨한 척을 하고 있지만 아빠 생각에는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거쳐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단다. 왜냐하면 보통 이 나이에는 아직 세상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는데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규칙이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이해하기는 어렵다보니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름의 상상과 망상을 섞어 바라본다고 한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 같아. 그래서 흔히 청소년기에 하는 가장 흔한 생각이 "나는 다르다"라든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저항적인 모습인 것 같단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적어도 나는 남들과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는 것 같단다. 

아빠도 이미 어른이고 여러가지 경험을 했다보니 이제는 사람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에서 헷갈리면 안되는 부분은 "사람의 삶은 다 똑같다"는 말은 우리 대부분이 동화나 소설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 뿐이지 모두 같은 형태의 삶을 산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란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 모두는 각각 그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자기 나름의 삶을 산다는 뜻이기도 한단다. 

이런 삶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면,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단다.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단다. 

하람이는 사람이 되고 싶니? 아빠가 전에 하람이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아빠는 네가 어떤 것을 한다고 해도 대치동의 다른 부모들처럼 그건 하지 말라고 한다거나 부모가 정해준 길로 가라고 말할 생각은 없단다. 아빠는 가능한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내길 바라거든. 하지만 아빠가 말하는 "하람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매우 모호한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세상에는 수만개의 직업이 있고 그만큼의 일이 있고 실제로 자기가 하는 일이 아니면 그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단다. 

그렇지만 이제는 네가 정해야 할 것 같단다. 

 

 

 

 

 

아빠가 어렸을 때, 네 할아버지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단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하얗고 큰 도화지에 하나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것이라고. 그 당시에 아빠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단다. 모든 것은 자신이 그려나가는 것이더라. 어떤 부분은 지저분한 색이 칠해질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깨끗하고 선명한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이 한 모든 것의 결과더구나. 아빠도 아빠의 도화지에 이미 절반 정도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렸지만 그 중에는 남들에게 보이기 창피한 것도 있고, 남들은 별 것 아니라고 느껴도 스스로는 자랑스러운 부분이 있단다.